본문 바로가기
❤️ 일상/▫️ 책도읽고 (독서)

[독서] 고흐 고갱 그리고 옐로하우스 책리뷰

by ⭐와우하는 여자⭐ 2020. 9. 17.

고흐와 고갱의 관계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은 그 둘이 아를에서 보낸 60일의 이야기에 꽤 많은 흥미를 느낄겁니다. 이미 아를에서의 두 사람의 이야기를 토대로 많은 책들이 나왔었고, 다큐나 방송, 영화로도 수차례 다뤄졌었으니까요.

저 역시 이 때의 고흐 이야기를 참 좋아합니다.

그래서 이 책을 구입한거고요.

 

저는 '미술가'로서의 고흐와 고갱은 둘 다 참 좋아하지만 '사람'으로는 어쩐지 고흐에게 자꾸만 마음이 갑니다.

그냥 '고흐'라는 단어만으로도 짠하고 안타까워요ㅠㅠ

많은 사람들이 고흐를 얘기할 때 '스스로 귀를 자른 화가'를 빼놓지 않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그가 왜 그러했는지, 그에게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죠. 물론 완벽한 진실은 그 시절의 고흐와 고갱만이 알겠으나 60일간 프랑스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의 두 사람의 이야기는 소설보다도 더 극적이었습니다.

아마 이 책을 읽고 나면 고흐와 고갱의 그림이 달리 보일겁니다.

 

 

고흐 고갱 그리고 옐로하우스

 

 

 

🌷

늦은 나이에 그림을 시작한 고갱은 이제 막 화가로서의 자리를 확립하기 시작했다. 지난 몇 년 동안 새로운 회화를 찾고 있던 젋은 화가들은 고갱을 추종하면서 그를 '스승'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반면 당시 35세였던 빈센트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다. 그는 거의 10년간 홀로 그림을 그려왔고 그의 작품은 단 두 번 전시되었을 뿐이었다.

- (도착) 49p.

 

🌷

작품 판매는 빈센트에게 매우 민감한 문제였다. 실제 화가로서의 빈센트는 거의 한 점의 그림도 팔지 못했다. 그렇게 기다리던 작품 판매에 대한 소식이 날아들었지만 판매된 작품은 빈센트의 그림이 아닌 고갱의 그림이었던 것이다.

경제적 문제뿐만 아니라 수많은 걱정으로 괴로워하던 빈센트에게 고갱의 도착은 그다지 기쁜 소식이 아니었다.

- (시작) 75p.

 

 

 

🌷

고갱은 매우 조직적으로 일했다. 그는 감청색으로 체계적인 구도를 잡아 드로잉을 한 뒤 부분들을 색으로 칠했다. 그 위에 다시 한 번 색칠을 했는데, 일정한 수직이나 대각선으로 붓질을 했다. 고갱은 부드럽고 매끄럽게 붓질을 했다. 이것은 마치 고양이가 쥐를 놀리는 모습 같았다. 이러한 과정은 보통 수일이 걸렸다.

- (무덤에서 배운 것) 110p.

 

🌷

고갱은 새로운 미술은 사진과 같은 기계적인 방식을 최대한 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한 이유로 나는 착시 효과를 주는 그 어떤 것도 최대한 피하려 해. 그림자도 빛의 착시 현상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굳이 그리지 않을 거야.'

결국 고갱에게 그림은 지적인 작업이었다.

- (무덤에서 배운 것) 114p.

 

🌷

해가 수평선에 닿는 순간, 그들은 다시 아를로 걸어왔다. 빈센트와 고갱은 이제 13일을 함께 지냈다. 그때까지는 모든 것이 좋았다.

- (무덤에서 배운 것) 141p.

 

 

 

🌷

그들은 작업하는 속도나 생각하는 속도나 창작하는 속도가 매우 달랐다. 고갱이 25년 동안 그림 그림의 수는 빈센트가 10년 동안 그린 그림 수와 비슷했다. 이것은 빈센트가 얼마나 놀라운 속도로 그림을 그렸는지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는 <아를의 여인>을 한 시간 만에 완성시키면서도 현란하게 붓질을 했을 것이다.

- (공동작업) 163p.

 

🌷

그러나 고갱이 그린 마리 지누는 빈센트가 생기있게 그렸던 아를 여인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고갱의 드로잉에서 그녀는 거의 무표정이었다. 그녀 앞에 놓인 테이블에는 소다수 병과 압생트 한 잔, 그리고 설탕이 접시에 놓여 있다.

압생트는 남부 프랑스의 가난한 사람들이 좋아했던 술이다.

- (공동작업) 167p.

 

 

 

🌷

빈센트는 여인들을 가까이서 그리지 않았다. 여인들을 가까이서 그리기 위해서는 모델을 보고 작업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빈센트에게 모델을 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고갱은 바로 그 작업을 하고 있었다. 고갱은 자신의 초기 작품을 바탕으로 빈센트가 생각했던 그림을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 (분열) 211p.

 

🌷

거의 한 달간의 조화로운 공동생활이 끝나고 빈센트와 고갱 사이에 새로운 긴장감이 돌기 시작했다. 이에 고갱은 이 곳에 계속 머물러야 하는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테오에게 보낸 빈센트의 마지막 편지는 이를 암시하고 있었다.

- (분열) 227p.

 

🌷

사창가와 창녀들이 고갱의 삶에서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지만 빈센트의 경우는 달랐다. 그에게도 아내와 아이들을 갖고 행복한 가정생활을 꾸려 나가느냐 화가로서의 직업을 선택하느냐의 갈등이 있었다. 화가가 되는 것은 성직자나 수도승이 되는 것과 같았다.

이처럼 이상하고 모순적인 논리에도 불구하고 빈센트는 여자와 아이를 갖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와 갈망의 감정을 가졌다. 즉, 그는 가족을 그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 (분열) 247p.

 

 

 

🌷

빈센트는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아버지이자 덴마크에 아내와 아이들을 두고 있는 고갱은 한편으로 지구의 다른 끝인 마르티니크로 가고 싶어했다. 양립 불가능한 욕망과 희망으로 그는 매우 괴로워했다.

- (화가의 초상화) 328p.

 

🌷

고갱은 이후 빈센트가 12월에 보였던 불안한 증상을 이렇게 기억했다.

옐로하우스 시절의 후반기, 빈센트는 매우 거칠고 소란스러웠다가 어느 순간 조용해지곤 했다. 나는 밤에 그가 갑자기 일어나서 내 침대로 오는 바람에 놀라곤 했다. 그 순간 어떻게 해야 했겠는가? 나는 "빈센트, 도대체 뭐가 문제야?"라고 물으며 다시 침대로 돌아가 자라고 했다.

- (화가의 초상화) 329p.

 

🌷

고갱은 그 다음날 자신이 본 장면을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피가 멈추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음이 틀림없다. 여러 장의 젖은 수건들이 바닥에 널려 있었다. 피는 두 개의 방과 침실로 가는 작은 계단에 떨어져 있었다.

- (위기) 369p.

 

🌷

빈센트는 옐로하우스를 위해 구입했던 침대보로 머리에서 솟아나는 피를 멎게 한 후, 자신의 잘린 신체 부분을 잘 씻어 신문 봉투에 넣었다. (중략) 그는 부다를 가 1번지에 있는 사창가로 갔다. 그는 문지기에게 라셸이라는 소녀를 볼 수 있는지 물어보았고 라셸에게 그 소름끼치는 꾸러미를 전달했다.

- (위기) 369p.

댓글